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개인, 부부, 가족 그리고 조직을 위해서 2004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체계론적 심리상담 전문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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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부가족치료 전문가 인턴과정

    9월 19 @ 08:00 - 12월 12 @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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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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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문제! 가족 갈등! 네 탓, 내 탓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해결 과제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족은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상대가 기대를 채워주면 좋은 관계가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피해 본다는 생각과 함께 상대에 대한 실망과 함께 깊은 마음에 상처까지 받게 되어 모든 책임을 상대에 전가합니다. 상대가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거나 피치 못할 자신의 처지를 납득시키면 갈등은 해소되지만 반대로 상대의 피해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거나 공격하면 갈등은 점차 고조되어 가족관계를 단절시키고, 최악의 경우에는 가족을 파국으로 몰고 갑니다.

가족은 부부간의 관계, 부모-자녀간의 관계, 형제-자매간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가족갈등은 이들 가족구성원 간에 발생합니다. 부부갈등, 자녀와 부모 간의 갈등, 부부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며느리와 사위의 지위로 인한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과의 갈등 등 다양합니다. 가족구성원간에는 정서적, 심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가족구성원 한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의 변화는 다른 구성원과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가족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가족관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관계가 좋지 못하여 갈등이 빈번하면 이는 부모-자녀갈등과 형제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이는 가족분위기와 자녀의 사회적응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갈등으로 인한 정서적•인지적 왜곡으로 비롯된 불행은

여러 삶의 영역에서 여러 형태로 반복하여 우리의 삶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개인상담은 개인의 심리적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물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개인적 능력을 향상시켜줍니다. 가족갈등이나 심한 사고나 충격 등으로 인한 잊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인상담을 통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개인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함께하는 가족, 옆에 있는 사람도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갈등은 가족의 현실을 나타내주는 신호입니다. 갈등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고통과 함께 그에 따른 비용까지 지불해야합니다.

사족갈등을 생산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개입 시기 및 방법에 관한 전문적인 분석과 계획 그리고 최선의 실행이 필요합니다.

갈등은 처리된 후에도 유사한 형태로 되풀이하여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친밀성이 강한 가족에서 이러한 경우가 빈번합니다. 갈등을 처리한다고 하지만 대개 당장 발생한 갈등에만 국한되기 때문에 정작 유사 갈등들을 반복하여 야기하는 갈등패턴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갈등조정은 이러한 갈등패턴을 근원적으로 처리함으로써 문제 및 갈등 해결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가족들이 더욱 발전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당장의 갈등을 처리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갈등패턴을 근원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조정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조정은 다음과 같은 갈등영역에 적용됩니다.

별거 및 이혼갈등

유산갈등

가족기업갈등

가족상담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적용됩니다.

개인적 증상이 가족관계와 얽혀 있는 경우입니다. 증상이 가족 전체의 고통이나 역기능을 표현한다하고 생각되면, 가족상담은 최선의 선택입니다.

도움을 구하는 사람의 호소가 특정 가족구성원의 문제보다도 가족 간 관계의 변화에 있는 경우입니다.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 형제자매관계의 갈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그 예입니다.

가족이 서로 분리되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입니다. 아동이나 청소년이 관련된 많은 문제행동의 이면에서는 분리에 대한 갈등이 내재된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경우에는 가족상담의 개입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위기의 가정 집단 상담을 다녀와서

몇 달 전 상담을 의뢰받았다.

위기를 겪고 있는 여러 가정을 상대로 집단 상담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쏟아지는 일과 쉴 틈 없는 일정에 한참을 망설였지만 가족상담자로서 위기가정을 돕는 것은 어떤 일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승낙했다.

모두 일곱 가정이 참가하는 상담이었다. 위기를 겪는 가족들이니만큼 심리적으로 매우 우울해 있었고 또 현실적인 문제도 많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에 맞춰 몇 개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도입부에는 서로 사귀는 시간을 갖게 하고, 이어 자신의 마음을 여는 이야기를 끌어내고, 마지막에는 그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심리 게임이나 대화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상황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도저히 그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참가자들이 나이 어린 7세 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긴 시간 집단 상담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족 단위이긴 했으나 혼자 온 사람이 있었고, 온 식구가 다 참가한 가족도 있었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이 대여섯 명 모여 있어 소란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준비해 간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이 상황에 맞는 뭔가를 빨리 찾아야 했다. 우선 한 가정씩 소개하도록 한 뒤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아이들을 말로만 진행하는 집단 상담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한 집단으로 하고, 어른들은 따로 한 집단으로 하였다. 아이들에게는 가족 그림을 그리는 과제를 주었다. 어른 집단으로 와서는 준비해 온 프로그램대로 진행했다.

처음 그들이 나를 보는 눈은 싸늘했다. 큰 불행을 겪은 사람들의 냉소적인 태도였다. 상담자가 위로하러 왔다고는 하지만 ‘당신이 게 맛을 알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들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관계가 망가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한 사람씩 자신이 겪은 일들을 꺼내 놓도록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그들의 경직된 태도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적은 바라지 않아요. 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해요.”

한 가정은 온 가족이 다 왔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11세의 아들이 참석했다.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몸 가누기가 편치 않아 보였고 말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자음은 들리지 않고 모음만 겨우 들리는 정도였다. 그런 그의 말을 아내는 잘 알아들으며 우리에게 통역해 주었다. 비록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존중하고, 또 옆에 살아 있어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이 숙연하게 했다.

남편은 열심히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돈을 꽤 잘 번 덕에 부인은 아이 양육과 집안 살림만 담당했다. 그런데 이런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해 아내가 생업전선에 나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끔찍한 현장을 두 눈 똑똑히 뜨고 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운전면허를 땄다. 부인은 “함께 살아 있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여태까지 해 보지 않던 가장 역할을 하려니 겁이 나고 어께가 무겁다.”는 고백을 솔직하게 했다. 가족이 집단 상담에 참여한 의의는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행복과 감사의 마음, 그러나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고 버겁고 부담스러운 마음을 서로에게 잘 ㅍ표현했다. 마음을 주고받으니 한결 삶이 무게가 가벼워진 느낌이라고 했다.

옆의 가정은 부인과 세 자녀가 왔다. 12세, 10세, 7세의 아들딸들은 예쁘고 똑똑했다. 말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총명함이 거침없이 묻어났다. 잘 키우면 사회에서 정말 한 역할하면서 살아갈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그 총명한 자녀들을 키울 힘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부인은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앞서 이야기한 가족이 너무 부럽다. 어떤 심한 장애가 있어도 상관없으니 남편이 살아 있기만 했으면 좋겠다.” 고 했다. 벌써 3년도 넘은 지난 일이건만 부인의 우울증은 심각했다.

아이들의 소원은 부인과 달랐다. 부인은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 아이들은 ‘엄마가 더 이상 울지 않기’를 소원했다. 엄마가 울면 자신들도 슬퍼지고 엄마의 눈치를 보메 된다며, 엄마가 웃고 편안해지면 자신들도 편안해질 거라고 했다. 자녀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그들 가까이 있었고 기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지만 지금은 엄마도 잃은 상태였다. 부인의 우울증 치료가 시급했다. 부인도 살리고 아이들도 살려야 했다.

“아이야, 슬픈 것은 나쁜 것이 아니야!”

부인이 힘과 희망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부인은 ‘자신이 너무 복이 없어 큰 불행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박복함을 달고 다니면 우울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부인에게 “당신은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바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쁘고 총명한 자녀가 셋이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 중의 축복이었다. 아이들이 일등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의미 있고 신나는 일이 될 게 분명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모두 의견을 같이했고, 또 부러워했다.

아이들과 집단 상담도 인상적이었다. 큰 슬픔을 겪은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순진무구했다. 한 아이만 유난히 행동이 부산하고 시끄러웠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찮은 내용에 갑자기 웃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했다. 그림을 그리게 해 보니 그 아이는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 장명을 그렸다. 그림을 설명하면서 잠시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더니, 친구들이 “쟤, 울겠다.”고 한마디 하자 갑자기 큰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돌리려 했다. 아이의 팔을 꽉 잡으며 아이가 상담자의 눈만 바라보게 했다. “친구들 눈치 보지 말고 선생님과 이야기해.” 아빠가 돌아가신 장면에서 얼마나 놀랐는지, 또 아빠 생각이 날 때 얼마나 슬픈지 등을 이야기하게 했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똑똑 흘렸다. 나는 “아가야, 괜찮아. 우는 것은 나쁜 게 아니고, 슬픈 것도 나쁜 게 아니야.” 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의 부산한 행동, 불안한 행동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위기 가정과의 만남을 마치고 나오면서 한 분 한 분에게 다시 인사를 했다. 처음의 싸늘한 눈빛은 어느새 따뜻하고 밝은 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산만했던 아이는 내가 안아 주니 저도 나를 꼭 안았다. 마음을 알아주어 고맙다는 나름의 표현이라는 걸 나는 안다. ‘이젠 엄마가 이 아이의 나름을 알아주어야하는데…’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상담 장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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